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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지명

봉화문화원게시판
  등록일 : 2023-12-26 | 조회 : 207 | 추천 : 0 [전체 : 72 건] [현재 1 / 1 쪽] [로그인]
이름
봉화문화원
제목
상운면 구천리(九川里)

※ 내용을 인용하실 때는 "출처:봉화문화원 홈페이지"를 꼭 기재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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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영천군 임지면 지역으로 앞 내[川]가 귀처럼 지형을 이루어 흐르므로 귀내 또는 귀천이
라 한다, 또한 지형이 구유(가축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처럼 생겼다 하여 조천이라 하기
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팔리·익곡리·사촌리·설매리 각 일부와 예안
군 북면의 원천동 일부를 병합하여 구천리라 해서 봉화군 상운면에 편입되었다.

귀내·구천(龜川·九川)·구천리(九川里)·본마 : 약 500년 전에 옥천 전씨 야옹(野翁) 진
사 전응방(全應房)이 영주에서 이주하여 처음 이곳에 자리 잡았다. 이곳 시냇가에 거북이와
같은 큰 바위가 있어‘ 귀내[龜川]’라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지세의 정기를 누르려고‘ 구천(九
川)’으로 개명하였고 거북바위를 파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야옹정(野翁亭) : 구천리에 소재하며 진사 전응방이 창건하고 퇴계 이황이 편액을 썼다. 야
옹정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 남박골 : 구천마을에서 남쪽에 있는 밭골이라서‘ 남밭골’이라고 하던 것을‘ 남박골’이라고 하
고 있다.
• 업은골·어분골 : 구천마을에서 원천 간 지방도 500m 지점에서 서북쪽에 있는 골이다. 산
등성이 모양이 사람의 등에 마치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지명이다.
• 석문동천(石門東天) : 구천 삼거리에서 도기 쪽으로 약 150m 지점 길 좌측에 위치한다. 구
천마을에서 동쪽으로 양쪽 산기슭에 바위가 마치 문 같이 생겨 있으며 그 문 사이로 동쪽
하늘이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한편 야옹 전응방의 석문정사 앞쪽이기에 석문동천
이라고 한다.
• 거문들 : 거문골이라고도 하며 소나무숲이 울창하여 어둡다는 뜻으로 불렀다고 한다. 거문
들 입구에 야옹 전응방의 석문정사(石門精舍)라는 서재(書齋)가 있었다고 한다. 서재 주변
에 서운대(棲雲臺 : 구름도 쉬어간다)와 완어대(玩魚臺 : 물고기를 보고 즐기다)라는 문구
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 회랭이 : 거문들의 석문정사 서제의 건너편 골짜기 연못에 연꽃이 피어있어 호련정이라고
불렀다. 또한 선비들의 산책로인 회랑(廻郞)공간으로 이용 되며 회랑로(廻郞路)가 회랭이로
불리게 되었다.
• 분통골 : 우직마을에서 창팔 간 농로 100m 지점 북쪽 골이다. 골 안이 곱고 훤하여 분통같
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먹골 : 우직에서 창팔 간 농로 350m 지점 북쪽에 있는 골이다. 골 안이 대낮에도 마치 먹
통 같이 컴컴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광대골 : 구천에서 원천 간 지방도 600m 지점 서북쪽에 있는 골이다. 골 안이 넓고 크며
옛날 광대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손광대골 : 광대골 윗골로 광대골 보다 골 안이 좁아 붙여진 지명이다.
• 도장골 : 골 입구는 좁으나 골 안은 넓어 마치 도장 같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도장은 옛날
가정집의 벽장과 곳간 겸 창고를 말한다.

도기(陶基·道基·都基) : 아주 옛날에는‘ 오치실’로 불렸다. 도자기굴이 있었으며 마을의
모양이 오목한 도자기 같다고 하여‘ 도기(陶基)’라고 불렀다. 또한‘ 도기(道基)’·‘도기(都
基)’라고도 표기하고 있다.

• 통배기 : 작은도기에서 동쪽으로 200m지점에 있다. 옛날 소통같이 생겼다고 통박(桶朴)이
라 부르던 것이 지금은‘ 통배기’라고 부른다.
• 삿갓재 : 큰도기 마을 뒷산으로 150m 지점에 위치한다. 재 모양이 마치 삿갓(비 올 때 머
리에 쓰는 기구) 꼭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솔고개 : 도기와 하토일 사이 농로 경계 지점이다. 한때 고갯길 양쪽에 큰 솔이 있어서 지나던
사람들이 많이 쉬어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큰골 : 도기 소류지가 있는 골이다. 골 안이 크고 넓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도래골 : 작은도기에서 서쪽 산 너머에 있는 골이다. 작은도기에서 그 골을 가자면 산모퉁
이를 돌아서 가야 해서 돌아서 간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장고개 : 본동마을에서 도기 간 500m 지점 남쪽 골을 말한다. 구천에서 안동군 녹전면 매
정동으로 연결되는 고개이다. 산길 고개가 길고 높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 작은도기 : 도기보다 집 수가 작다고 하여‘ 작은도기’라 하고 옥천 전씨의 재궁(齋宮)이 있다
고 하여‘ 도기재궁’이라고도 불렀다.

오치실·오치곡(梧雉谷) : 도기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오동나무가 많은 마을이라 붙여
진 지명이다. 송씨·김씨·조씨 등이 살고 있다.

방골·방곡(芳谷·方谷) : 냇물이 마을을 빙빙 돌아 흐르고 앞산은 마을을 안고 있어 봄에
꽃이 피면 마치 꽃 속에 마을이 있어 꽃다운 골이란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 웃방골 : 방골 북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예전에는 웃방골로 가는 길이 있었고, 의성
김씨 재사도 있었다. 현재 집은 없고, 재사도 2019년에 헐어서 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들·원평(元坪) : 구천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들이 넓어서‘ 원평’이라 하였
으며 구천에서 으뜸가는 들이라고도 한다. 안동 권씨 외에 여러 성씨가 살고 있다.

• 복상나무집골 : 방골과 이산면 두월리 방면 200m 지점 북쪽 골이다. 옛날에 집 주변에 복
숭아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현재는 흔적이 없다.
• 서낭당골·서낭댕이 : 구천 원들과 이산면 두월1리 지방도로 경계지점이다. 옛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성황당이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와 상운면 구천리 사이 고개에 있어서 생긴 지
명이다. 현재는 없어지고 당에 쓰던 돌무지만 남아 있다.
•안원들 : 원들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넓은 들이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골방골 : 골 안이 골방[房]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예수바위골·배첨지골 : 건너골 옆 조그마한 골이다. 옛날 큰 바위 밑에 여우가 많이 살았
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예전에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배씨가 살던 골이라
하여 배첨지골로도 불린다.

창팔(昌八)·창주(滄州) : 1600년 경 야성(冶城) 송씨(宋氏) 수봉(秀蜂) 삼문관(三文官) 집
이 정착하고, 1830년 경에 달성 서씨가 배첨골에 정착하고, 1850년 경에 안동 권씨가 정
착하여 현재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엔 야성 송씨 창계리사(昌溪里舍)가 있어서 많은
선비들이 공부를 하였다고 하며 현재까지도 장학계(將學契)가 존속하고 있다. 창팔이라고
불러진 것은 이 곳에 8장사(壯士)가 있었다고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마을 입구에 봉수대
의 옛 자리가 남아있다.

• 벼락친골 : 창팔에서 동쪽으로 약 400m 지점에 있다. 옛날 벼락이 떨어져 못이 생겼다는
설과 벼락이 떨어져 돌이 깨져서‘ 벼락친골’이라고 한다.
• 숫골 : 창팔에서 서쪽으로 300m 지점에 있다. 숲이 유난히 많이 우거진 골이라 하여‘ 숲골’
이라 하던 것을 현재‘ 숫골’이라 부르며 골 입구에서 동쪽 골을 큰숫골, 서쪽 골을 작은숫골
이라고 한다.
• 돌다리 : 창팔에서 서남쪽으로 200m 지점에 있다. 돌로 다리를 놓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 송장군 두 사람이 들어다 놓은 다리라고 하여‘ 돌다리’라고 하나 현재는 위
에 흙을 덮어 길을 넓혔고, 돌다리는 창팔 경로당 앞으로 옮겨두었다.
• 풍대밭골 : 예나 지금이나 바람이 다른 곳보다 심하게 분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바람이
몹시 부는 곳이다.
• 이등골 : 창팔과 평은면 경계산 500m 지점에서 북쪽 골이다. 골 입구는 하나이나 들어가면
양쪽으로 이등분되어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 가메실 : 창팔과 평은면 경계 쪽으로 700m 지점에서 동쪽 골이다. 골 안이 입구와 위는 좁고
중간은 넓어 마치 가메(사람의 머리 가마)같이 생겼다.
• 이명대골 : 가메실 건너 마주 보는 골이다. 골 안으로 들어가면 넓다. 현재 농사를 짓지 않
고 묵혀서 나무만 있다. 유래는 알 수 없다.

• 가장골 : 시신을 묻기 전에 이곳에 가매장을 한 뒤 정식 묘소에 묻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
이다.
• 뒷골 : 창팔에서 동쪽에 있는 골로 뒤로 돌아져 있는 골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큰골 : 북골마을서 동쪽에 있는 골이다. 창팔에서 제일 큰 골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벅골 : 창팔마을 앞산 너머 골이다. 옛날에 법당(절)이 있었다고 해서‘ 법골’이라 하였는데
현재 부르기 쉬운‘ 벅골’이라 한다. 골 입구에서 동쪽 골을‘ 큰벅골’, 서쪽 골을‘ 작은벅골’이
라 하며, 비가 오려고 하면‘ 둥둥둥’하면서 목탁소리가 난다고 한다.
• 봉우골·봉화골 : 창팔에서 서북쪽으로 200m 지점에 있다. 조선시대 봉화를 올리던 곳이
라 하여‘ 봉우골’로 불렸다.
•북골 : 창팔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음우골 : 창팔에서 동쪽으로 300m 지점에 있다. 창팔마을 앞 골로 골 안이 산 그림자에 막
혀 해는 들지 않으며 해가 중천에 떠야 잠시 든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창계이사터 : 창팔 앞산 산 너머에 있다. 서원보다 낮은 것을 이사라 하였으며 흥선대원군
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으며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창계는 훼철된 이사를 건립한
야성 송씨 선조의 호라고 한다. 2007년에‘ 창계이사지’ 표지석을 세웠다.
• 장학소(裝學所) : 창계이사는 훼철되고 없어졌으나 당시 야성 송씨의 선비들이 근방 각 성
씨 문중의 젊은이들을 가르쳐서 그 후손들이 조직한 契(계)이다. 스승의 가르침에 보답한다
는 뜻으로 계의 재산을 형성하여 지금도 해마다 그 잉여금으로 일년에 하루씩 친목을 도모
하고 있다고 한다.
• 외탕골·애탄골 : 옛날 어린애들이 죽으면 외진 곳에 묻었다고 하여‘ 외탕골’이라고, 하나
어린애를 갖다 묻어‘ 애가 탄다.’고 하여‘ 애탄골’이라고도 한다.
•동해골·동예골 : 북골마을에서 동쪽 해가 떠오르는 골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매방재 : 북골마을 동북쪽 마을 너머 골이다. 옛날에 매를 날려 묘터를 잡아 썼다고 하여 붙
여진 지명이다.

우직골·우직이 : 구천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옛날에 이 마을을 개척한 사람들이 비록
어리석고 배움은 없었으나 마음은 곧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윗마 : 구천 위쪽에 있는 마을로서 주로 옥천 전씨가 살고 있다. 상운에서 구천으로 가는
지방도로를 중심으로 서쪽 개울 건너 자리 잡고 있으며 옥천 전씨 구천파 야옹 전응방 선생
의 후손이 살기 시작한 지 500년이 되었으며, 마을 남쪽에는 야옹정과 전씨 종택(宗宅)·
사당(祠堂)이 자리잡고 있다.
봉화문화원님이 2023-12-26 오전 11:46:00 에 작성하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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