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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지명

봉화문화원게시판
  등록일 : 2023-12-26 | 조회 : 435 | 추천 : 0 [전체 : 72 건] [현재 1 / 1 쪽] [로그인]
이름
봉화문화원
제목
상운면 가곡리(佳谷里)

※ 내용을 인용하실 때는 "출처:봉화문화원 홈페이지"를 꼭 기재하여 주십시오. 

   무단 전재 및 재배포는 금지합니다.



본래 봉화군의 서면 지역으로‘ 더느실·드느실’ 또는‘ 가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후평리·익곡리·운곡리·반송리·북평리의 각 일부와 내성면(현 봉화읍)의
입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곡리라 하고 상운면에 편입시켰다. 현재 가곡 1리·2리·3리로 나
뉘어져 있다.

1. 상운면 가곡1리

머름골·두암곡(斗岩谷)·교촌(校村) : 약 250년 전 안동 권씨에 머름이란 택호를 가진 사
람이 마을을 개척하고, 본인의 택호를 따서‘ 머름골’이라 하였다. 1933년 상운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학교 옆 마을이라 하여‘ 교촌(校村)’이라 부르고 있다.

• 장구맥이 : 머름골 북서쪽에 있다. 지형이 장구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장구맥이’라 부르고
있다.
• 묘골 : 안동 권씨들이 집성을 이루고 살면서 선조들의 묘소가 모여 있는 곳이라 하여‘ 묘골’
로 부르고 있다.
• 묵밭골 : 옛날 어렵게 산전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을 당시부터‘ 묵밭골’이라 불렀다. 또 현
위치에 밭이 묵어 있다고 해서‘ 묵밭골’이라고도 한다.‘ 묵밭’은‘ 농사를 짓지 않는 밭’을 뜻
한다.
• 청고개마을 : 청고개[靑峴]를 넘기 전 북쪽 양지쪽 마을을 말하며 100여 년 전 경주 이씨,
영일 정씨가 마을을 이루었고, 마을의 남쪽에 길상사(寺刹)가 있다.
• 욋골 : 상운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골이다. 머름골과 장터마을 사이에 있는 인가와 멀리 떨
어져 있는 외딴골이라 하여‘ 욋골’로 부르고 있다.

더느실·가곡리(佳谷里)·가곡(佳谷)·장터·시장(市場) : 약 200년 전 안동 권씨가 마을
을 개척하면서 앞으로 마을이 더 커진다는 뜻으로‘ 더느실’로 불러오다가 행정구역상의 지
명인‘ 가곡리’라고 했다. 1921년 9월 상운면사무소를 운계리에서 가곡리로 옮겨 시장이 개
설된 후‘ 장터’·‘시장(市場)’이라고 부르고 있다.

• 도치장골 : 상운정미소 뒤쪽 골짜기이다. 장터마을 뒷골에 도살장이 있었다고 해서‘ 도치장
골’이라 부르고 있다‘. 도치’는‘ 도끼’의 의미이다.
• 참샘골 : 장터마을에서 까치골[鵲洞]로 가는 사이 산기슭에 샘이 있는 곳이다. 물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오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인근 민가에서는 참샘물을 길러 먹었다 하여‘ 참샘
골’이라고 한다.
• 뒷골 : 장터마을 내 농협과 상운파출소 사이 샛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골짜기이다. 장터마을
뒤편에 있어‘ 뒷골’이라고 부른다.

까치골·작동(鶴洞) : 약 300년 전 인천 채씨(仁川蔡氏)가 개척한 마을이다. 뒷산의 모양이
까치가 알을 품은 듯 하다고 해서 까치골[작동(鶴洞)]이라고 부른다.

•건너골 : 작동 건너편에 있는 골이라 하여‘ 건너골’이라고 한다.
•갓구멍 : 작동에서 올려다보면 지형이 갓을 벗어놓은 형상이라 하여‘ 갓구멍’이라 칭한다.
• 신불동산(神佛東山) : 작동과 덕골 마을 주민들이 모여 까치골 뒷산 정상에 있다. 큰 소나무
와 바위에 칠성당을 모시고 신수를 비는 곳이라 하여‘ 신불동산’이라고 부른다. 현재 당집은
없다.



2. 상운면 가곡2리

윗반송·웃반송·상반송(上盤松)·재궁(齋宮)마을·동쪽마을 : 반송마을 동쪽에 위치하여
‘동쪽 마을’이라고 한다. 또 진성 이씨 재궁이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재궁마을이라 하며‘ 정
(亭)마을’이라고도 한다.

• 미수고개 : 무시무시하다는 의태어로서 아주 무섭다는 뜻으로 불린 무시고개가‘ 미수고개’로
바뀌었다고 전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상운 주민들이 봉화읍 소재지로 오가는 지름길이다.
• 봉우골 : 윗반송 북쪽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에 나라의 긴급사태를 알리는 봉화(烽火)를 올
리던 곳이다. 봉수대(烽燧臺)가 있던 골이란 뜻으로‘ 봉우골’이라 부른다.
• 큰광이 : 윗반송 동남쪽에 있는 들이다. 들 입구에 비하면 골 안이 넓으며 서향 들로 곡식이
많이 생산된다는 뜻에서‘ 큰광이(큰창고)’라 부르게 되었다.
•점치골 : 윗반송 뒷산 너머에 있다.

아랫반송·하반송(下盤松)·반송(盤松) : 약 400년 전 풍산 류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나
그 후 단양 우씨가 동성마을을 이루어 많이 살고 있다. 당시 마을 입구에 큰 소나무가 소반
(둥근 밥상) 모양으로 서 있다고 하여‘ 반송(盤松)’이라 불렀다고 한다.

• 연대골[燕臺谷] : 지형이 제비집과 같은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리고 이 골에
는 약물 바위가 있는데, 옻이 오른 사람이 약물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바르면 옻이 나았다
고 전해진다

중반송(中盤松)·짐승골·웃마 : 반송마을에서 상운 방면 동북쪽 500m 지점에 있는 마을
이다. 마을 지형이 금자형(金字型)으로 이루어져 금생곡(金生谷)이라 하였으나 금생곡이 구
전되어 오는 동안‘ 짐승곡’·‘짐승골’로도 부르게 되었다. 또 옛날에는 다래나무가 높이 우
거져 있어 짐승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며 반송마을 중간에 위치하여‘ 중반송’이라고도 한다.

• 뱀재 : 조선시대 안동에서 봉화까지 국도로 활용되었고, 상운에서 봉화 가는 길에 이 뱀재
를 지났다. 유래는 형국이 뱀(蛇)의 형태라 하여‘ 뱀재’라고 불렀다. 산 지형이 윗반송 산줄
기와 뱀재 산줄기가 두 갈래로 뻗어 있는데 뱀이 많아 그 길에 들어서면 꼭 한 번쯤 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뱀굴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 해동강절(海東康節) 남사고(南師
古)는 선친의 묘터를 찾던 중 죽령에서 용의 형상을 보고 찾아왔으나 뱀의 형상이었다고 하
는 조선의 유명한 풍수학자인 남사고의 전설이 있다.
• 탑밭 : 옛날 유명한 풍수학자 남사고가 타고 다니던 말무덤(돌을 쌓아둔 돌무더기)이 있던
밭이다. 현재는 돌무더기가 철거된 상태로 경작되고 있다.

덕골[德谷] : 집들이 분산되어 있어 위쪽에 있는 마을을 윗덕골, 덕골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지죽장(池竹場)이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마을의 위치가 사방에서 올라오
는 높은 곳에 있어서 덕골이라고 하였다 한다.

• 도매미 : 덕골 아랫마을에서 동쪽으로 200m 지점에 있다. 지형이 도마뱀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당목재(塘木岾) : 덕골 본 마을 남서쪽 600m 지점에 있다. 마을의 복을 비는 당나무로 매
년 정월 보름 동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 왕바우골 : 덕골 아랫마을에서 맞은 편 300m 지점에 있다. 골 안쪽으로 큰 돌이 있고 여러
모양의 돌이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웃덕골 : 덕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여졌다.
•건너골 : 덕골 건너편에 있는 골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집너머골 : 덕골을 중심으로 집 너머에 위치하여붙여진 지명이다.

뱀골·배암골·배암동(培岩洞) : 더느실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뱀처럼 생긴 골짜기에 있
는 마을이라 하여‘ 뱀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3. 상운면 가곡3리

돌리·돌릉·석릉(石陵) : 마을 중심 언덕에 회장석으로 된 큰 능이 있다고 하여‘ 석
능’·‘돌리’라 부르게 되었다. 또 김해 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돌리’라고도 불렀다.

• 재궁골·정마 : 돌리에서 봉화 방향 500m 지점에 있는 골이다. 예천 권씨 재사가 있던 곳
이라 하여‘ 재궁골’이라 부르던 것이‘ 정(亭)마’가 되었다. 동네가 번성하였을 때는 약 20여
호가 살고 있었으나 현재 귀농 1세대가 살고 있으며, 과수원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막골 : 석능 동쪽에 3년 동안 시묘한 막이 있었다고 하여‘ 동막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후평(後坪)·뒤뜰·뒷들 : 엄경걸(嚴敬杰)이라는 선비가 약 400년 전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산의 모양이 용이 돌아앉은 듯하다고 해서 회용동(回龍洞)이라고 하였다. 그러다 권오영(權
五榮)·엄경걸 두 선비가 안동 뒤쪽에 있다고 하여‘ 후평’이라 개칭하였다 한다.

• 큰마 : 후평보다 먼저 생겼고, 마을이 커서 큰 마을로 불렀으며 현재는 모두 과수원 등 경작
지로 변하였다.
• 지그막골·기와막골 : 후평 본 마을 뒷골에 위치한다. 큰 기와집이 있는 골이라 하여‘ 기와
막골’이라 부르던 것이‘ 지그막골’이 되었다. 6.25전쟁 당시 산재마을을 집단마을로 이주시
킨 정책에 의하여 집은 철거되고 현재는 농경지로 변하였다.
• 거이골[乾以谷] : 물이 귀한 골로 한발 피해가 심하여‘ 건이골’이라 부르던 것이 구전 되면서
‘거이골’이 되었다.
• 땅골 : 본 마을에서 상운 방면 300m 지점에 위치한다. 당동산(唐東山)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당곡’이라 부르던 것이 구전되어 오면서‘ 땅골’이 되었다. 또 밭둑에 딱나무가 많아서
‘딱골’이라 부르던 것이‘ 땅골’이 되었다고도 한다.
• 건바위들 : 동네 건너편에 큰 바위가 있다고 하여‘ 건너바위들’로 부르던 것이‘ 건바위들’이
되었다.
• 중개들 : 1960년대 경지 정리에 따른 상운면 내 약 10ha의 넓은 들이다. 마을 앞들과 돌리
들 사이에 있다고 하여‘ 중간’ 또는‘ 중개들’이라 부르고 있다.
•앞실·앞들 : 마을 앞에 위치한 들이라 하여‘ 앞실이’라 부른다.
•이터[利平]들 : 중개들 건너편 들이다. 토질이 좋다는 의미로‘ 이터들’이라 한다.

백골[百谷] : 들 양편으로 골이 많다고 하여 백골이라 부른다. 1940년대 수리시설 소류지
(沼溜池) 1,000평을 조성하였고 이를 백골지라 한다.

• 조우골·조기골(조골) : 후평에서 봉화 방면으로 약 500m 지점 좌측에 위치한다. 풍수지리
설에 따라 청주 한씨 묘 앞에 못을 팠는데 그 못에서 조기만 한 고기를 잡았다 하여‘ 조기골’
이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조골’로 부르고 있다.
• 산뒤골 : 조골 맞은편에 있는 골이다. 운계1리 소야 사람의 농경지가 있으며 소야의 산 뒤
에 있는 골이라 하여‘ 산뒤골’이라 부른다
봉화문화원님이 2023-12-26 오전 9:41:00 에 작성하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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