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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지명

봉화문화원게시판
  등록일 : 2023-12-26 | 조회 : 201 | 추천 : 0 [전체 : 72 건] [현재 1 / 1 쪽] [로그인]
이름
봉화문화원
제목
명호면 북곡리(北谷里)

※ 내용을 인용하실 때는 "출처:봉화문화원 홈페이지"를 꼭 기재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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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안동부에 딸린 재산현 지역으로 청량산 뒤라 하여‘ 뒤실’ 또는‘ 북곡’이라고 했다. 1895년
(고종 32년) 봉화군 하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상남면 운산리를 병합
하여 북곡리라 해서 명호면에 편입되었다.

명호면 북곡리

뒤실·북곡(北谷)·북곡리(北谷里)·두실(斗室) : 마을 앞 낙동강에 북두칠성의 모양을 한
바위와 말 바위가 있어‘ 두실’이라고 했다가‘ 뒤실’로 바뀌었다. 또 옛날에 서당으로 이용된
두암정(斗岩亭)이 있다. 북곡은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되며, 청량산 뒤 북쪽
에 마을이 있어‘ 북곡’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정보화마을이 되면서 현재는 주로‘ 두실’로
불리고 있다.

•칠성바위 : 마을 앞 낙동강에 있는 돌로 북두칠성 모양처럼 물 위에 비쳐서 붙여진 지명이다.
•잣골 : 마을 앞산 골짜기이다. 옛날 이곳에 커다란 잣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도장골 : 잣골 위 골짜기가 오목하게 도장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뒷골 : 뒤실 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 말바위 : 마을 앞 오마교 위 낙동강에 있는 돌로 갈모나 말발굽 같은 모양이라‘ 갈모바위’ 또
는‘ 말바위’라고 한다.
• 강변(江邊)·강변마을(江邊村)·아래뒤실 : 북곡에서 가장 낮은 지대인 낙동강변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라‘ 강변마을’ 혹은‘ 아랫뒤실’이라고 부른다. 명호초등학교 북곡분교장(폐교)이
있고, 교통이 가장 편리하여 북곡리 여러 마을이 이곳을 꼭 지나가야 한다고 해서 소재지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 인내비·잎내비·엽곡(葉谷)·잎너비 : 강변마을에서 청량산 입구까지 중간 정도 되는 지
점에 있다. 예로부터 충주 지씨가 살던 마을로 그들 조상의 묘가 있다고 한다. 청량산에서
봄이 가장 일찍 오는 골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구름재·운현(雲峴)·운산(雲山) : 북장골 뒤 높은 산 위에 넓은 들로 구름도 쉬어 가는 곳
이라 하여‘ 구름재’ 또는‘ 운현’이라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 정사성(鄭士誠)이 태조의 영정
을 가지고 피란을 와서 운산정(雲山亭)을 세운 뒤‘ 운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시루바우 : 구름재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형이 떡시루처럼 생겨 붙혀진 지명이다.

웃뒤실·상북곡(上北谷) : 뒤실 위로 강변에서 약 3㎞ 정도 동쪽으로 산길을 올라 문명산
남쪽 아래 위치한 마을로‘ 윗뒤실’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은 월성 이씨가 개척했고 단종 폐
위 후 밀양 박씨가 입향 했다. 그 후 영천 이씨·진성 이씨 등 여러 성씨가 마을을 이루었
고, 6.25 때 마을이 소실되었다. 그 후 다시 마을을 재건하였다. 마을 뒤에는 공민왕과 왕
비를 모시는 황각(隍閣)이 있다.

• 한티골 : 웃뒤실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청량산 북쪽 계곡을 따라 재산으로 큰 재를 넘어가
는 골이라는 뜻의 지명이다.

갈평(葛坪·葛平)·갈평지 : 북장골 남쪽 청량산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이곳에 갈
대가 많아‘ 갈평’이라 부른다고 한다. 또 마을이 생기기 전 칡덩굴이 우거진 넓은 들이 있었
고‘, 갈화락지(葛花落地)’의 명당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마을 뒤로 낙동강을 굽
어볼 수 있는 곳에 왜목이가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인내비 : 갈평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배나무골 : 마을 어귀에 큰 배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은 없다.
• 다래바위 : 마을 뒤 청량산 의상봉 줄기로 다래덩굴이 많은 곳에 큰 암벽이 있는데 이를 보
고 붙여진 지명이다.
• 명밭골 : 마을 앞 골짜기에서 한티로 가는 곳까지 무명(목화)을 많이 재배했다고 하여 붙여
진 지명이다.
• 설매골 : 마을 뒤 의상봉 줄기에 있는 골이다. 옛날에 나무를 한 짐 지고 내려오다가 이곳에
서부터 지게를 벗어 썰매를 타듯이 나무를 굴려서 내려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부엉이등·호두암 : 마을 뒤에 암석이 있는데 부엉이처럼 생긴 바위는‘ 부엉이등’이라 하고,
호랑이 머리같이 생긴 바위는‘ 호두암’이라 부른다.

북장곡(北藏谷)·부고동(富庫洞)·불단골[佛壇谷] : 웃뒤실로 접어드는 오르막 길목에서
왼쪽으로 갈라져 900m 정도 산모퉁이를 지나면 나오는 마을이다. 약 250년 전 고성 이씨
가 개척했고, 불단이 있었다고 하여‘ 불단골’이라 부른다. 또 마을이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
고 북쪽으로 숨어 있다고 해서‘ 북장골’이라고도 한다.

• 삼밭골 : 마을 오른쪽에 있는 골이다. 옛날 길쌈에 사용한 삼베를 많이 재배하던 곳이라 하
여 붙여진 지명이다.
•바른골 : 마을에서 오른편 긴골이다.
•옥장골 : 마을 왼쪽 골짜기이다. 오목하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절터골 : 북장곡 입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절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절터골’이라
고 불렀다. 지금은 절이 없다.

청량(淸凉)·청량골 : 청량산 계곡에 산재한 마을로, 불가(佛家)에서 가장 도를 깨끗하게
닦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청량산 입구부터 재산면 경계까지‘ 청량골’이라고 한다. 또
청량골마·청량두들마, 폐동이 된 청량잿마 등이 모두 청량이다. 청량산은 옛날부터 소금
강으로 불린 명산이다. 청량사, 김생굴, 공민왕당, 청량산성 등이 있다

• 청량산(淸凉山) : 높이 870m인 청량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이라 한다. 최고봉인 장
인봉을 비롯하여 12개의 고봉이 치솟아 절경을 이룬다. 그 밖에도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
었다는 신선대, 고운대 등 절묘한 절승지가 많다. 이 산에는 27개의 절과 암자의 유지가 있
다.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청량사(淸凉寺) 유리보전(琉璃寶殿)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을 피하여 은신한 오마대와 특히 퇴계 이황이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
정사(淸凉精舍)가 있다. 청량산은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국가지정 명승 으
로 지정되었다.
• 무르티재·물티재 : 청량골에서 재산면 남면리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청량두들마[靑邱] : 청량산 동쪽에 있다. 두들이란 높은 언덕의 들이라는 뜻으로 청량산 높
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청량골마 : 청량산에 딸린 마을로 가장 큰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옛날부터 경주 이씨가 살
고 있다.

•청량잿마 : 청량산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사주(寺住)목이 : 청량골마에서 재산면으로 넘어가는 무르티재 길목에 마을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산성(山城) : 청량산 남쪽 맞은편 축융봉 아래 위치한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곳으로 피난 와서 성을 쌓았다. 마을 앞산 고지에 공민왕당과 오마대(五馬臺)가 남아 있다.

•남대목 : 산성에서 안동군 예안면 신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옥산(玉山) : 웃뒤실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의 명당이 있
어‘ 옥산’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묘를 쓰면 옥관자 3말이 나는 터라고 한다. 퇴계의 증손 기
(岐)와 그의 아들 극철(克哲)의 묘소가 이곳이고 실제로 후손 중에 벼슬한 사람이 많아‘ 옥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옥산재 : 옥산에서 재산면 현동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조내실·조대실·조천실(趙川室)·조래실[鳥川室] : 뒤실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
을에 새가 풀숲에 집을 지어놓은 형상의 명당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 이곳에
‘조천당’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봉화문화원님이 2023-12-26 오전 9:31:00 에 작성하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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