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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전설

봉화문화원게시판
  등록일 : 2023-03-28 | 조회 : 409 | 추천 : 0 [전체 : 14 건] [현재 1 / 1 쪽] [로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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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네쏘(비녀沼)와 구모쏘(穿川沼)

비네쏘(비녀沼)와 구모쏘(穿川沼)

춘양면 의양리 운곡동 나북댕이(지금의 춘양중학교)앞의 운곡천에는 비녀소(비네쏘)라고 하는 바위 밑에 웅덩이가 있고, 강원도 삼척군 장성부 강점리의 도로옆 오른쪽의 낙동강 상류에는 구모쏘(穿川沼)라고 하는 웅덩이가 있다. 이 두 웅덩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646)때였다. 선덕여왕에게는 효도(孝道)라고 하는 왕자가 있었다. 효도왕자는 성품이 서민적이어서, 궁중생활에 실증을 느끼고 전국을 유람하며 소박한 백성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고자 하였다. 그러던중 선덕여왕 8년 1월 15일 밤에 효도왕자는 아무도 모르게 시종 한 사람을 데리고 궁궐의 담을 뛰어넘어서 유람길에 나서게 되었다. 서라벌을 벗어나서, 봉화군의 명호면 청량산에 이르러서는 이 곳의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느끼고, 효도암(孝道庵)이라는 조그마한 집을 짓고 공부하며 살게 되었다. 왕자는 이 곳에서 3개월간 공부하다가 다시 그 곳을 떠났고, 5월 4일 재산면에 이르렀다. 다음날이 단오날이어서 왕자는 주막에 머물렀는데. 단오날 아침에 바깥에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창을 열고 보니 주막 옆의 냇가(내의 이름이 花川인데, 효도왕자가 지었다고 한다) 버드나무 사이로 아름다운 처녀들이 그네를 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처녀들 중에서 남색치마에 분홍저고리를 입은 처녀의 자태에 왕자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왕자는 시종을 시켜서 그 처녀의 집과 이름을 알아 오게 했다. 그녀는 고을 백정을 딸인데, 이름은 월선(月仙)이라고 했다. 왕자는 시종에게 오늘밤 월선의 집에 갈테니, 안내를 하라고 하였다. 왕자의 이 말에 시종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어떻게 한 나라의 왕자님께서 그런 천한 백정의 딸을 마음에 두십니까? 그 일은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이 말에 왕자는 화를 내며 시종에게 호통을 치게 되었다.

"백정의 딸은 이나라의 백성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날 밤, 왕자는 월선의 집을 찾아갔는데, 집에 들어서니 집의 주인인 백정은 뜰 앞에 엎드려서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이유를 왕자가 물으니,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는 천하기 이를 데 없는 백정의 집을 귀하신 왕자님께서 행차하신 것에 대한 감격으로 인해 울고 있는 것으로 아뢰옵니다." 백정의 말을 들은 왕자는 백정의 손을 잡고 위로하였다. 

"허허. 손님이 찾아온 것이 무슨 잘못이요, 주인이 이렇게 뜰에 있으면, 손님접대를 어떻게 하겠소?"

왕자는 주인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고, 이어 주안상이 마련되어 들어왔다. 백정은 딸 월선을 불러서 왕자님께 술을 권하게 하였는데, 월선이 상기된 얼굴로 살그머니 올리는 술잔의 그윽한 향기는 왕자의 마음을 더욱 설레이기 하였다. 마침내 왕자와 월선은 그날 밤에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게 되었다. 왕자와 월선의 이때부터 행복한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서라벌의 왕궁에서 사신이 찾아와서는 어명을 전하였다. 

"빨리 궁궐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 병환이 위독하시옵니다. 또한 귀하신 왕자께서 천한 백성의 아녀자와 함께 하심은 도리에 어긋나니, 빨리 환궁하라는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우선 어머니인 선덕여왕의 병이 위중하니, 왕자는 궁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왕자와 월선은 지금의 재산면에서 도산면에 이르는 고개인 눈물고개에 이르러 이별을 하게 되었다. 왕자는 월선에게 왕궁에 도착하는대로 소식을 전할테니 기다리라며 월선의 손을 잡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월선에게 금비녀 한 개를 전해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것은 내 아내에게 주려했던 금비녀인데, 정표로 그대에게 주고 가니 꼭 간직하시오."

왕자와 헤어진 월선은 밤마다 금비녀를 오아자님 보듯이 어루만지면서 서라벌에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듬해 봄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편지가 서라벌 왕궁에서 사신과 함께 도착하였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였다.

'낭자. 못견디게 보고싶소. 낭자도 소식을 오기를 무척 기다렸을 것이요. 진작에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미안하오. 그럼 내가 낭자와 함께 인연을 맺었던 5월 단오날 강원도 삼척군 상표면 낙동강 상류에 있는 구모소(穿川沼)에서 기다릴테니 사람의 눈을 피해서 꼭 오도록 하오.'

왕자의 편지를 읽은 월선은 그날 바로 구무쏘를 향해 길을 떠났다. 월서은 평탄지를 지나 공이재를 넘어 춘양면 의양리의 한 개울 웅덩이 옆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개울물이 소용돌이를 치는 바람에 놀라서 월선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금비녀를 물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월선은 많이 놀랐으나, 그 비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월선은 왕자가 실수로 잃어버린 것을 책망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삼척으로 가서 구모쏘에 도착하게 된다. 구모쏘 옆에는 청의(靑衣)를 입은 동자가 있었다. 그는 분명 효도왕자였다. 월선은 왕자와의 만남이 반가웠지만, 금비녀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왕자를 만나 그간의 자초지정을 말하면, 이해해 줄 것이라는 월선의 생각과 달리 왕자는 월선의 말을 듣고는 냉정하게 돌아서고 말았다. 이에 왕자에게 버림받은 것이라 생각한 월선은 죽음을 택하고, 구모쏘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그런데 구모쏘에 몸을 던진 월선은 얼마뒤 구모쏘 옆 모레밭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비네쏘에서 잃어버린 금비녀가 있었다. 금비녀를 찾은 월선은 지금의 이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꿈인가 했지만, 그 상황은 현실이었다. 월선은 죽지 않았고, 금비녀 또한 그녀가 잃어버렸던 금비녀였다. 

 

춘양의 비네쏘에 있던 금비녀가 삼척의 구멍쏘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양쪽의 쏘가 직선으로 백리 정도 되었지만, 땅밑으로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쏘에 빠졌던 월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또한 하늘의 신령이 월선을 가엽게 여겨서 쏘의 물을 빠지게 했기 때문이었다.

 

월선은 금비녀를 품고 서라벌로 가서 효도왕자를 다시 만났고, 두 사람은 오대산 속에서 속세를 떠나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봉화문화원님이 2023-03-28 오전 10:06:00 에 작성하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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